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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복지 차원에서 부산의 사회복지관 활동은 미국 감리교 선교부가 1952년 한국전쟁와중에 서구 토성동에 기독사회관이라는
이름의 복지관을 만들어 당시의 사회문제인 피난민, 부랑인, 고아를 대상으로 자선사업을 시작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그후 부산지역의 사회복지관은 1970년대말까지 기독교복지관이 유일하게 존재하다가 1980년대 부산종합사회복지관 등 5개소가
설립되고, 1990년에는 연제구종합사회복지관 등 5개소가 추가로 설립되었다.

2015년 10월 현재 부산의 사회복지관 수는 총 53개소로 거의 1990년대 이후 설립된 사회복지관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952'   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
1985'   부산사회복지관(한국복지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로사)
1988'   장선종합사회복지관
1989'   금곡종합사회복지관, 영진종합사회복지관
1990'   금정구종합사회복지관, 사하구종합사회복지관, 연제구종합사회복지관, 해운대종합사회복지관,
남구종합사회복지관
1991'   반송종합사회복지관, 동구종합사회복지관
1992'   부산진구종합사회복지관, 덕천종합사회복지관, 영도구종합사회복지관, 동삼사회복지관, 운봉종합사회복지관, 다대사회복지관, 감만사회복지관, 모라종합사회복지관
1993'   학장사회복지관, 사상구종합사회복지관, 백양종합사회복지관, 서구종합사회복지관
1994'   강서구종합사회복지관,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절영종합사회복지관, 중구종합사회복지관, 공창종합사회복지관, 동원종합사회복지관, 화정종합사회복지관
1995'   개금종합사회복지관, 남산정사회복지관, 두송종합사회복지관, 와치종합사회복지관, 반석종합사회복지관
1996'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용호종합사회복지관, 몰운대종합사회복지관
1997'   사직종합사회복지관
1998'   동래종합사회복지관, 남광종합사회복지관, 기장종합사회복지관
1999'   낙동종합사회복지관
2001'   파랑새종합사회복지관
2002'   전포종합사회복지관
2004'   화명종합사회복지관, 구평종합사회복지관
2007'   홀트수영종합사회복지관, 만덕종합사회복지관
2009'   반여종합사회복지관
2013'   거제종합사회복지관

부산은 일제시대 이전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지역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농업과 어업이 중심이 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이조시대까지 존재하였던 농촌협동조직은 존재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일제이후 부산은 일본과 한국을 이어주는 관문구실을 하는 지역으로 각종 물류가 빈번히 교차하는 도시로 발전하였지만
서구의 근대적 의미의 사회복지사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의 사회복지관 사업은 1921년 태화여자관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해방 전까지 이러한 사회복지관 운동이 부산지역까지
파급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최초의 부산지역 사회복지관은 한국 사회복지관 태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미국 감리교 선교부의 역할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즉, 1952년 한국동란의 와중에서 미국 감리교 선교부는 이곳 부산지역에 타운젠트(Townsend)여사를 파견하여 사회복지관
사업을 시작하도록 하였다.



 
 
 
최초의 사회복지관 “기독사회관” 시작


개관 당시 기독사회관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부산지역 최초의 사회복지관은 피난민과 고아를 대상으로 식량, 의복, 생필품 지원 등 구호사업을 전개함과 동시 의료기관과 연계하여 빈곤계층의 주민들에게 진료 및 투약 등의 의료사업도 실시하였다. 1955년 기독사회관은 경남중?고교학생과 부산여고 학생 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사업도 실시하였으나 사업의 중심은 여전히 의료복지사업에 두고 간질환자의 진료와 투약업무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기독사회관의 의료복지사업은 당시 의사와 병 의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절에 지역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빈민의 의료문제로 보고 접근한 것으로 여타지역의 사회복지관 사업과는 차별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1956년부터 1965년까지 약 10여년 동안 미국 감리교 선교부는 다른 여선교사를 후속적으로 파견하여 이 기관의 관장직을 맡게 하였다. 초대관장인 타운젠트(Yownsend)여사 이후로 로써(Rosser)여사, 하퍼(Harper)여사, 피켓(Pickett)여사, 스튜와트(Stewarts)여사, 쇼(Shaw)여사, 보보(Bobo)여사가 차례로 1~2년간 관장으로 순차적으로 역임하였다.
 
최초의 한국인 관장(강유두 관장) 취임 및 활동


1965년 5월부터 최초로 한국인 관장이 임명되었는데, 당시 강유두 관장은 1965년 대학을 졸업한 여성을 중심으로 사회봉사와 사회참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부산여학사회를 조직하여, 오늘날 부산지역에서 여성주도의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모태를 이루었다. 또한 부산지역 여성계몽단체의 성격을 갖는 부산절제회를 조직하여 금주/금연/근검을 실천하는 사회계몽 운동을 실천하였다. 기독사회관이 초창기 부산지역에서 유일한 사회복지관으로 존재했지만 사회운동과 사회개혁차원에서 사업을 전개하였다. 1970년대부터 기독사회관은 장기려 박사를 비롯한 의식 있는 기독교 의사를 중심으로 기존의 간질환자에 대한 사업을 활성화하야 ‘장미회’란 이름의 무료진료 서비스팀을 형성하였다. 1976년에는 어린이집을 인가받아 아동복지사업을 시작했다.
 
부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으로의 명칭 변경


1986년에는 종합사회복지관으로 인가받아 기독사회관에서 명칭을 부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으로 변경하였다. 박순옥 관장을 포함하여 전문직 7명, 사무직 2명, 종업원 3명, 시간제직원 2명 등 총 16명의 직원들이 가정복지, 아동복지, 청소년복지, 장애인복지, 유아원사업, 특별사업 등 6개 분야의 사업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는 상당, 집단활동, 경제적 원조, 보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어 오늘날 사회복지관의 기본적안 사업분류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1952년 부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기독사회관)이 부산지역에 최초로 설립되어 운영된 이래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부산지역에 사회복지관이 추가로 설립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5년 서구 아미동에 부산사회복지관(한국복지재단), 수영구 망미동에 부산종합사회복지관(로사), 1988년 북구 구포동에 장선종합사회복지관이 설치되었고, 1989년에는 금곡종합사회복지관과 영진종합사회복지관, 1990년에 연제구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한 5개 복지관이 추가로 설립되어 1990년 12월 총 11개 사회복지관이 부산지역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설립된 부산지역 사회복지관들은 주로 사회복지법인과 종교단체에 의해 자발적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전국적인 현상과 크게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당시의 인력구성과 프로그램을 유심히 살펴보면 복지관의 인력에서 사회복지사의 비중이 낮고 프로그램 또한 전반적으로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수행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들 기관의 사업내용은 정부가 1989년 6월 보사훈령 제568호 사회복지관 설치운영규정을 마련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아동복지/청소년복지/가정복지/노인복지/장애인복지/지역복지를 포함한 6대 사업에 따라 상담/교육/지원/사회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거의 대동소이하게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산지역 각 취약지역에 설치된 당시의 사회복지관은 지역특성을 반영하는 사업을 전개해야했기 때문에 입지여건별로 차별성도 상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다. 예컨대, 동구 수정동 안창마을에 위치한 당시 동구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주민이 절대빈곤층이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각종 구호사업을 실시했으며, 연제구종합사회복지관은 당시 무허가 건물이 밀집된 빈곤계층의 지역환경에서 가정개발사업과 공동작업장사업에 초점을 맞추어 사업이 진행되었다(연제구종합사회복지관 10년사).

부산의 지역복지 발달사를 사회복지관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1980대 후반부터 1990년가지를 성장기로 보는 이유는 그전까지 사회복지관이 다수 존재했지만 이 시기부터 정부의 사회복지관 운영에 대한 보조금이 지급되기 시작했으며 사업내용도 어느 정도 표준화된 규정과 지침에 의해서 통일성을 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부보조금의 지급은 사업실적 보고와 결산보고를 의무적으로 수반하기에 사회복지관 운영 및 관리의 행정체계가 일단 마련되었다는 점에서도 향후 사회복지관의 발전의 토대가 되었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설립주체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한 사업내용을 표준화하여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도 향후 사회복지관의 발전을 위한 계기의 마련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지역사회복지관의 양적 팽창은 1990년대 초반에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영구임대아파트 지역의 사회복지관들이 속속 개관함에 따라 그 수가 급증하였는데 이러한 복지관으로는 영도구의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사상구의 학장종합사회복지관, 북구의 모라와 백양종합사회복지관, 금정구의 반송과 반석종합사회복지관 등이 새롭게 설치되었다. 또한 1990년대 10년 동안 부산지역사회복지관의 급속한 수적증가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부산시의 사회복지관 육성정책이었다.

도시의 규모가 팽창하고 행정구역이 조정됨에 따라 각 구별로 복지관이 편중되어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산시는 수요조사를 근거로 하여 사회복지관이 설치되지 않은 구에 사회복지관 설치와 육성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예컨대, 동래구가 연제구로 분구되어 기존의 동래종합사회복지관이 행정구역상으로 연제구에 편입되어 연제구종합사회복지관으로 되자, 동래구는 사회복지관이 1개소도 없는 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에 부산시와 동래구청은 1997년 사직종합사회복지관과 1998년 동래종합사회복지관을 건립하여 설치하는데 앞장서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 사회복지관 증설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대학이 운영하는 사회복지관이 부산지역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던 대학부설 사회복지관이 수도권 이남에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신라대학교가 부설기관으로 사직종합사회복지관을 위탁 운영하도록 결정하여 1997년 6월 동래구 사직동에 복지관을 개관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후로도 사회복지관은 지속적으로 추가 설치되었다.
2001년 전포종합사회복지관, 2004년에는 화명종합사회복지관과 구평종합사회복지관이 설치되면서 부산지역에 49개의 복지관이 지역복지종합센터로서의 기능을 하며 지역주민의 욕구에 부합하는 지역복지사업을 추진해 왔다. 사회복지관은 전문성 확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또한, 지역주민의 욕구에 기인한 전문적인 복지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지역주민에게 제공하는 등 높은 전문성을 확보해 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우수 프로그램 배분사업과 기업복지재단의 프로그램 지원사업은 사회문제와 사회복지욕구에 부합하는 우수 프로그램을 개발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전문성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각 사회복지관의 관장과 직원들은 사업의 전문성 강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프로그램 개발과 실행, 평가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해 왔다. 2000년과 2003년에 전국적으로 시행된 사회복지관 평가도 부산지역사회복지관의 발전에 기여 한 점이 있다고 판단된다.

사실상 정부주도의 사회복지관 평가는 충분한 시간과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점도 노출시켰지만 평가대상이 된 대부분의 사회복지관은 인력관리, 재정관리, 프로그램관리, 문서관리 등 사회복지관 운영 전반에 대해서 스스로의 결점과 약점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여 보다 선진화된 사회복지관 운영과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